목록전체 글 (158)
습작의 방
그날 저녁.하루를 거반 보내고 마침내 서로 합류한 일행은 재정비가 필요하다 결정하고 하루를 더 같은 자리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랄라는 주변을 살폈고, 프레야와 조르단은 식재료를 진득하고 정체 모를 수프로 연성하였다.미닉이 잠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테오미르는 밤새 지필 마른 가지를 모았다.곧 그들 위로 또 다른 밤이 내렸다.그리고 이것은 모두가 잠들고, 불침번을 마친 랄라가 테오미르와 교대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다.테오미르가 먼저 랄라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슬레이어 동무.”"말 걸지 마, 이 악마야. 난 이제 잘 거라구유." 랄라는 걸음도 멈추지 않고 새침하게 대꾸했다.그에 기가 죽을 테오미르가 아니었다. "혹시 페스카즈의 슬레이어라고 아니?” 랄라의 어깨가 움찔했다.발걸음을 ..
마침내 마을에 도착한 미닉과 테오미르.그러나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만은 않았다.적어도 테오미르에게는 그랬다.그는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어찌나 당황했던지 차마 말을 끝까지 맺지도 못하고 미닉을 향해 사납게 눈알만 부라렸다.그러나 미닉로부터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 하자 그의 팔을 필요 이상으로 세게 툭툭 쳤다.테오미르가 속삭였다. “이보라요, 사이비 동무. 나더러 덜길 들어가라는 거이아?” 두 사람 앞에는 작지만 깔끔하게 관리된 교회가 한 채 서 있었다.생겨난 지는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았고, 모든 방문자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 주겠다는 교단의 넓은 포부를 그대로 반영한양 마을 초입에 입구처럼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그 뒤로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웅집해 있는 마을터가 보였다.동이 트..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여명의 푸른빛을 맞으며 두 사람은 사막을 나아가고 있었다.사막의 새벽 기온은 내륙의 한겨울을 떠올리게 할 만큼 추워 냉기에 노출된 얼굴과 손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낮에는 최고 50도까지 오르는 기후 탓에 새벽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미닉은 옷깃을 여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을씨년스럽고 적막한 풍경이었다.야윈 선인장과 키가 작고 노랗게 바짝 마른 관목들이 드문드문 메마른 풍경 속에서 눈에 띄었다.저 멀리 황량한 바위산과 메사, 쩍쩍 갈라진 척박한 땅덩어리로만 이루어진 듯 지평선의 끝까지 이어지는 삭막한 풍경 속에선 사람은커녕 짐승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이 지역에 관해 들은 것이 있었다.외곽의 마을.오아시스를 개척해 세워진 작은 촌마을에 관한 것이었다..
동쪽에 있다는 누베이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모르긴 몰라도 성 스탈데일보다 더 오지인 것 같았다.길이 현저히 좁아지고 험난해지며 녹음이 줄어들고, 벌침처럼 따가운 땡볕이 대지의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었다.사막이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럴수록 일행은 금방 지쳤고 자주 쉴수록 시간이 지체되었다.이토록 긴 여행을 한 적이 없는 프레야에게는 특히나 고역이었다.이틀째부터 발에 물집이 생기고 퉁퉁 붓더니 이제는 절뚝거릴 때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쩔뚝거리고 힘들어하는 프레야를 위해서 나귀의 등에서 짐을 내리고 대신 프레야를 태웠다.짐은 다른 이들이 나누어 짊어져야 했다.프레야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이 누베이 수도원으로 피신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물론 그 이유를 알게 되더라도 프..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다시 둘로 나뉠 때면 사나운 바람이 대기를 갈랐다.무수한 싸움의 흔적이 빠른 속도로 주변 풍경을 바꾸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며 프레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무능한 자신을 탓하는 것 외에는. “프레야!” 때마침 숲 전체에 울려 퍼지는 날벼락을 듣고 미닉이 달려왔다.그는 프레야의 상태부터 살폈다. “다친 데는? 괜찮아?”“난 괜찮은데···.” 프레야가 말을 흐리며 전방을 고갯짓 하자 미닉의 시선이 피 터지게 싸우는 랄라와 조르단, 그리고 테오미르를 향했다. “이건 대체···?”“랄라 씨가 테오미르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 두통을 느끼며 미닉은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역시 테오미르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어야 했는데···. “일단 돌아..
해가 저물자 숲의 진정한 주인들이 왕성한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프레야는 커다란 박달나무 둥치에 쭈그리고 앉아 말랑거리는 버섯을 캐고 있었다.프레야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말을 갑자기 하면으은! 그것도 여러 사람 앞에서 하며느으오우아아아아으. 나도 당연히! 나도 당연히이익!”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프레야.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모닥불 너머 미닉이 자신을 응시하는 상황이 몇 번이고 재생되고 있었다.그때마다 기습에 튕겨 나온 불행한 붕어처럼 헐떡거리게 되는 것이었다.프레야는 기억 저편에 앉은 미닉을 가리키며 외쳤다. “오브 코스, 베이뷔!” 그 뒤로 이어지는 길고 긴 탄식.왜 그리 대답하지 못했단 말인가?그렇게 기다리던 기회였건만 어쩌자고 도망쳐버렸단 말인가.프레야는 비탄에 잠겨 일대의 버섯을 기계..
세 사람과 한 마리의 당나귀 인간이 앞으로 나아갔다.눈물을 머금고 수도원 가족들과 작별한 프레야를 위로하기 위해서일까.여행하는 동안 그들을 안내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용병 랄라와 조르단은 과장된 경쾌함으로 이 작은 무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그러는 동안 몇 개의 크고 작은 마을을 지났다.어느덧 일행의 앞에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아까 그 마을에서 멈추자고 할 걸 그랬나?’ 후회하는 미닉의 옆에서 랄라는 더 어두워지기 전 이곳에서 밤을 보낼 준비를 하자고 말했다. “나는 주변 좀 둘러보고 올 테니까 그동안 저녁 준비와 잘 준비를 해줭.” 각자가 맡은 역할을 위해 군말 없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일행.미닉이 텐트를 치는 동안 프레야와 조르단은 저녁 준비를 했다.사실 대부분의 경우 프레야는 입만 털 뿐..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이 하늘을 태울 듯 빨갛게 물들였다. 불길한 적색.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어둠이 몰려왔다. 악이 활개를 치는 어둠의 시간. 그것은 죄의 시간일 터다. 미닉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숲의 가장자리를 서성였다. 그는 이 모든 일에 의구심이 들었다. 손 쓸 새 없이 어긋나는 상황이 한밤중 지독한 악몽 같았다. 혼란스럽게 머릿속을 헤집고 뒤흔들며 난리통을 치는가 하면 타르처럼 끈끈하게 들러붙어 놓아주질 않았다. 어둠에 사로잡히듯 생각에 빠져들수록 진정할 수 없었다. ‘미친 짓이지.’ 이성은 그렇게 다그쳤다. 죄의 골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일도 있다. 그 일이 설사 자기를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넣는 일일지라도. 그렇다. 그녀만은 어떻게든, ‘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