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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프레야!

5. 랄라는 이기는 게임만 합니다

습작하면리또마스 2022. 6. 20. 13:52

Photo by Jackson David

 

동쪽에 있다는 누베이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모르긴 몰라도 성 스탈데일보다 더 오지인 것 같았다.

길이 현저히 좁아지고 험난해지며 녹음이 줄어들고, 벌침처럼 따가운 땡볕이 대지의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었다.

사막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일행은 금방 지쳤고 자주 쉴수록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토록 긴 여행을 한 적이 없는 프레야에게는 특히나 고역이었다.

이틀째부터 발에 물집이 생기고 퉁퉁 붓더니 이제는 절뚝거릴 때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

쩔뚝거리고 힘들어하는 프레야를 위해서 나귀의 등에서 짐을 내리고 대신 프레야를 태웠다.

짐은 다른 이들이 나누어 짊어져야 했다.

프레야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이 누베이 수도원으로 피신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이유를 알게 되더라도 프레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이 난무하고, 초월적인 힘과 스피드로 육탄전을 벌이는 이들 사이에서 프레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체 얼마나 있단 말인가?

프레야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지금은 그저 미닉을 포함한 모두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프레야가 결심을 하고 있는데,

 


“식량과 물을 찾으러 가야겠어.”

 


미닉이 말했다.

 



“혼자서?!”

 


미닉의 말에 펄쩍 뛰는 프레야.

미닉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아니. 일단 나와 테오미르가 같이 움직일 거야. 넌 조르단 씨와  랄라 씨와 여기 남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할 수는 없으니까.”

 



프레야의 댓발 나온 입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미닉은 낮게 한숨을 쉬고는 프레야를 안심시켰다.

 



“늦어도 하루 이상은 안 걸릴 거야. 그동안 랄라씨와 조르단 씨가 지켜줄 거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기는 했다.

테오미르가 합류하면서 예상보다 식량이 빠르게 소진되었던 것.

프레야는 지도를 펼쳐 놓고 간단히 계획을 세우는 미닉을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며칠 전 밤에 있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

새벽녘이 가까워 잠에 깬 프레야는 다 꺼진 모닥불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미닉을 발견하였다.

흐뭇하게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미닉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무서운 꿈을 꾸는 모양이었다.

 



“가엾은 미닉 사제님. 내가 지켜줄게요! 하아앙!’

 



미닉이 뭔가를 눈치챈 듯 고개를 들고 물었다.

 



“응? 프레야, 무슨 말 했어?”

“아..아니야! 암 말도 안 했어"

“기분 나쁜 기딥.”

 


에비테의 새끼답게 일행에 합류한 이래 단 한순간도 심술을 멈추지 않은 테오미르가 못된 말로 빈정거렸다.

단 하루라도 못된 말을 하지 않으면 혓바늘이 돋기 때문이었다.
 
마족의 생태가 그러했다.

테오미르의 주장에 의하면 그렇다는 말이었다.

 



“일 없으멘 더기 구석에 땅 박혀 있으라. 뒤에서 알땅거리니끼리 거슬림메.”

“바보야! 넌 입 다물고 있어! 이걸 그냥 확 마-!”

 



그러면서 손날로 내리칠 듯한 동작으로 위협했다.

절도 있게 각 잡힌 모양이 성 스탈데일에서 많이 해본 솜씨였다.

매우 위험한 여자였다.

테오미르는 움츠러들었다.

그 기세에 밀린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만, 분했다.

사라진 가오는 되돌릴 수 없다.
 
모두가 테오미르의 이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프레야! 너 지금!”

 



미닉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프레야는,

 



“장난이야, 장난! 헤헤.”

 



수줍게 헤헤 웃더니 빠르게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여 멀어지는 미닉과 테오미르를 배웅한 프레야는 캠프장에 돌아와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며 근심에 잠겼다.

 



‘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아니, 차라리 다 같이 갔더라면... 역시 내가 짐이 되는 걸까?’

 



프레야는 저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계에서 넘어왔다던 리카 선생님에게 뭐 하나 배워둘 걸 그랬다고, 사기 치는 줄 알고 무시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프레야, 그러지 말고 여기 앉아염.”

 


프레야가 몸을 움찔하자 랄라가 손짓했다.

한숨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여태 안 자고 뭐 해용?”

 


자리에서 일어난 프레야는 머쓱한 표정으로 히힛 웃었다.

그러고는 잠시간의 정적.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러붙었다.

프레야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꼭 이렇게 기다려야 해요?”

“걱정하는구나?”
 

 

 
그리 물으며 모닥불을 들쑤시는 랄라의 구릿빛 피부 위로 불꽃의 붉은빛이 아른거렸다.

그녀의 옆에는 눈을 감은 조르단은 벌레를 쫓으며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또 떨어져 있어야 하잖아. 그런 건 싫은데.’

“무사히 돌아올 거야. 그 바보가 같이 갔잖아용.”

 



랄라가 달래듯 말했다.

다시 침묵.

조용히 불꽃 위로 날아오르는 불씨를 바라보던 프레야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랄라 씨, 이런 질문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입을 다무는 것이 세상 사는 지혜임을 아직 알지 못하는 프레야가 눈치를 살폈다.

대인배 랄라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야는 말했다.

 



“랄라 씨는 슬레이어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고생스럽고 허접한 일을 맡으신 거예요?”

 


랄라는 깜짝 놀랐다.

투박한 손을 크게 휘젓기까지 했다.

 



“아직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

“슬레이어라고 부르는 사람들.”

“그게 왜요?”

 



프레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테오미르도 랄라를 슬레이어라고 불렀다.

사실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프레야의 의문을 알아차린 랄라가 친절히 설명했다.

 



“난 늑대예용. 민간 회사 외로운 늑대와 계약 고용된 해결사지. 골칫거리가 생기셨나용? 분해서 참을 수가 없으시다고용! 그럼 지금 당장 연락하세용! 의뢰를 받는 즉시 끝장나게 해결해 드립니당!”

 



최정예 사원답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외로운 늑대 광고 멘트를 읊은 랄라는 자기의 왼쪽 가슴에 달린 작은 늑대 머리 형태의 은빛 브로치를 가리켰다.

두 겹의 테두리 안에 ‘LW’가 멋들어지게 음각되어 있었다.

 


“이건 외로운 늑대 소속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허가증. 이게 있어야 놀이에 참가할 수 있다구유. 그걸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지만.”

“놀이요?”

“그래. 놀이.”

 



그리 말하는 랄라가 잠시 생각하듯 눈빛이 흐릿해졌다.

 



“프레야게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알려줄게용.”

“중요한 사실 뭐요? 혹시 비밀?”

 



랄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쉽에 껌벅 죽는 프레야가 잔뜩 신이 나서 랄라에게 귀를 댔다.

 


“이 놀이 언제나 술래가 이겨용.”

 


랄라는 속삭였다.

 



“그리고 그 술래가 바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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