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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프레야!

1. 미닉이 테오미르를 만납니다

습작하면리또마스 2022. 5. 23. 04:48

Photo by Daniel Peters
Photo by Daniel Peters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이 하늘을 태울 듯 빨갛게 물들였다.

불길한 적색.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어둠이 몰려왔다.

악이 활개를 치는 어둠의 시간.

그것은 죄의 시간일 터다.


미닉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숲의 가장자리를 서성였다.

그는 이 모든 일에 의구심이 들었다.

손 쓸 새 없이 어긋나는 상황이 한밤중 지독한 악몽 같았다.

혼란스럽게 머릿속을 헤집고 뒤흔들며 난리통을 치는가 하면 타르처럼 끈끈하게 들러붙어 놓아주질 않았다.

어둠에 사로잡히듯 생각에 빠져들수록 진정할 수 없었다.

 



‘미친 짓이지.’

 



이성은 그렇게 다그쳤다.

죄의 골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일도 있다.

그 일이 설사 자기를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넣는 일일지라도.

그렇다.

그녀만은 어떻게든,

 




‘프레야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만 해.’

 


기실 오래전 그러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마음은 여지없이 흔들렸다.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죄에 대한 두려움.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행해야 할 때 오는 가책에 대한 두려움.


그때였다.

 




“날 불러낸 거이 너니?”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미닉은 숨을 삼키며 돌아섰다.

검은 장발의 남자가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이름은 테오미르.

파리한 얼굴이 루시안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미스터리한 위험을 풍기는 루시안나와는 달리 야위고 음영진 테오미르의 얼굴에는 오랜 기간 중병을 앓은 환자 특유의 위태로운 권태감이 느껴졌다.

곧이라도 스러질 연기와도 같은 나른함.

그러나 어두운 잿빛 눈동자가 위험스러울 만치 형형했다.

 


‘마치 짐승과도 같군, 마족.’

 



미닉은 생각했다.

동시에 또 다른 목소리가 그를 다그쳤다.

 



‘네가 저 악마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도 그럴 것이 점점 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죄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자신과 지옥 주민의 만남이 아닌가.

역겨움의 대상은 테오미르가 아니라 미닉 그 자신이었다.

 

 


“기래서 에르테의 사도께서 에비테의 종에게 무슨 볼닐이신가?”


 



잠시간 침묵을 지키며 마찬가지로 미닉을 살피던 테오미르가 마침내 말했다.

팔짱을 끼고 한껏 건들거리는 태도가 흡사 시장터의 싸움패 같았다.

 



“이 몸을 불러내다니 아주 건방딘 놈이구먼 기래?”

“용건이 있다.”

“농건? 훗.”

 


한 손으로 멋들어지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테오미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기 사기꾼 너자가 이 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딜 않았나 보구만. 내래 이래 봐도···.”

“이미 잘 알고 있어. 물론 그 빚에 대해서도.”

 


미닉은 테오미르의 잘난 척을 중간에서 끊으며 말했다. 

 



“물론 이 일은 프레야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너를 불러낸 건 순전히 나 혼자 한 일이야.”

 



미닉은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 갔다. 
무력감.

그러나 해내야만 한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쓰게 내뱉었다.

 



“··· 네가 그녀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

“네가. 그녀를. 그들로부터. 나도 거저 꺼내는 이야기는 아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겠다. 그래. 이건 계약이다. 난 상관없어.”

“후라이까지 마라. 고작 기딴 돼먹디 못한 너잘 디켜달라고 이래는 거이야? 내래 멍청해 보이네? 앙?”

“속이지 않아.”

“얼씨구.”

 



하얗게 눈을 흘기는 테오미르의 추임새에도 미닉은 망설이지 않았다.

 



“난 이미 다른 상대와도 계약에 묶인 몸. 또 한 번이라고 못할 건 없어.”

 


미닉이 테오미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안 그런가?”

 


또 다른 침묵.

테오미르가 기댔던 몸을 반듯이 일으켜 세웠다.

 



“이거이 기리니끼리 날짤없는 사이비다 이 말이구만, 기래. 동무래 둑을 땐 참 볼만할 거이야. 제단처럼 높이 쌓은 나뭇단 위에서 활활 불타오를 테니깐.”

 



재밌는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놓고 웃어댔다.

들썩이는 입술 사이로 뾰족한 치아 끝이 드러났다.

 



‘그래. 이런 악마였단 말이지?’

 


미닉은 음울하게 생각했다.

죄의 더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갈 안내자가 이런 자라면....

아니, 어쩌면 이런 자이기 때문에 나을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란 없었다.

대체 무슨 구원을 바랐단 말인가?

 



“상관없다. 이미 내 끝은 정해져 있었으니. 모든 일이 끝난 후에 그 죗값은 달게 받을 작정이다. 도망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

 



어째선지 허탈하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어찌할 거지? 나와 계약할 테냐? 그것만 말해.”

“.....”

“원하지 않는 건가?”

“빚의 청산.”

 



테오미르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기것도 완전한 청산이라우. 우린 계산만큼은 철더히 하기로 했거든. 기게 사기꾼과 내 약속의 일부다 이 말이디.”

“계약도 아닌 약속 때문이라고? 마족이 인간 흉내인가?”

 



일순 테오미르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네놈은 사이비잖네!”

 



지평선에서 마지막 황금색 빛줄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숲에 밤이 짙게 몰려왔다.

숲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좋다.”

 


그 대답만으로 충분했다.

계약은 지체 없이 체결되었다.

미닉은 계약의 사슬이 그의 왼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 위에 뜨겁게 새겨짐을 느꼈다.

 


‘이대로 된 거다. 정말 이대로...’

 


그러는 순간에도 불안은 가증되고 있었다.

무언가가 자꾸 엇나가는 느낌.

혹은 그런 예감.


불확실함과 불길함이 미닉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손에 끼워진 불길한 검은 반지의 존재를 여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의식했다.

 



“와 기케까디 필사적인 거네? 기딴 사기꾼은 엿이나 먹으라고 하라우.”

“내게도... 그녀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

 


미닉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인간이 아닌 테오미르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레트로 갬성 판타지. 'ㅁ'ㅋ

드라마 보고 배운 전혀 정확하지 않은 사투리로 대사 쓰자니 너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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