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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프레야!

4. 테오미르와 랄라는 부모님의 안부를 묻습니다

습작하면리또마스 2022. 6. 12. 23:21

숲
Photo by Patrick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다시 둘로 나뉠 때면 사나운 바람이 대기를 갈랐다.

무수한 싸움의 흔적이 빠른 속도로 주변 풍경을 바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프레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능한 자신을 탓하는 것 외에는.

 


“프레야!”

 



때마침 숲 전체에 울려 퍼지는 날벼락을 듣고 미닉이 달려왔다.

그는 프레야의 상태부터 살폈다.

 



“다친 데는? 괜찮아?”

“난 괜찮은데···.”

 



프레야가 말을 흐리며 전방을 고갯짓 하자 미닉의 시선이 피 터지게 싸우는 랄라와 조르단, 그리고 테오미르를 향했다.

 


“이건 대체···?”

“랄라 씨가 테오미르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

 



두통을 느끼며 미닉은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역시 테오미르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어야 했는데···.

 



“일단 돌아가자.”

“하지만!”

“싸우다가 지치면 알아서들 화해하겠지.” 

 



미닉는 머뭇거리는 프레야의 등을 떠밀어 캠프장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침낭 안에 눕히며 계속해서 걱정하는 프레야를 진정시켰다.

 


“걱정하지 마. 적당할 때 멈출 거야.”

“안 그러면? 꼴통들이어서 누구라도 크게 다치면 어떡해?”

“···그렇지 않을 거야. 우리 세 사람을 믿자. 지금은 네 걱정만 하는 거야.”

“오빠···.”

 


미닉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오랜만이네. 그렇게 부른 거.”

 



프레야는 당황하며 이불을 눈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다시는 그렇게 안 부를 줄 알았는데···.”

“으아아으아그 그 그거야 당연히 오 오빠는 오빠니까 오빠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지. 내, 내가 언제 오빠라고 안 불렀다고 그래요오오.”

“내가 사제직을 받아들이고나서부터였지 아마?”

“그, 그런 걸 왜 아는 거야? 당연히 오빠는 사제님이니까 우릴 모르는 사람들이 괜히 오해하면···. 물론 그게 싫다는 게 아니라··· 내가 싫다는 게 아니라··· 아니, 내 말은 그렇다고 내가 원한다는 소리는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 아니 오빠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혹시라도 내 말은 아주 혹시라도···.”

 


프레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째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더 꼬이는지···.

 


“···오빠는 나한테 언제나 오빠였는데 그게···내가 혹여라도 다른 뜻을 품고 있다거나 그렇다는 게 아니라···.”

“프레야.”

“하지만 그게 또 막 싫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사실 나는-”

“프레야 그만.”

 



미닉이 프레야의 말을 중단시켰다.

 



“넌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언제나 그랬어.”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이 진심임을 프레야는 알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그런 건 상관없어.”
 

 


미닉의 그런 감정과 마주할 때마다 프레야는 전신에 가득 퍼지는 몽실몽실하면서도 저릿저릿한 감정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눈물로 터질 것처럼.

 



“난 널 지킬 거야.”

 



미닉 또한 프레야를 사랑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그 의미가 비록 프레야 자신과는 조금도 같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도.”

 


그래도 프레야는 상관없었다.

 



“···나도 오빠를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미닉은 두 눈을 깜빡거리면서 잠시 침묵하더니 짧게 웃었다.

그의 손이 장난스럽게 프레야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그래. 꼭 그래주라.”

 “흐이이잉. 뭐래요. 내 말을 하나도 안 믿는 것처럼.”

“아니야. 믿어.”

 


미닉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진심으로.”

“거짓말! 방금 거짓말한 거 다 알아요!”

“얼른 자.”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미닉.

상심한 프레야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이내 정신을 잃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쩌겠는가.

아주 피곤한 첫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의 창백한 빛을 받으며 숙면하고 꿀피부를 얻은 프레야와 밤새 캠프를 지키느라 눈밑이 거뭇거뭇해진 미닉이 싸움꾼들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다.

꼴통들은 놀랍게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밤새 치고받고 싸워 지친 상태임에도 여전히 서로를 향해 하얗게 눈을 흘기면서 씩씩대고 있었다.

하지만 훌륭하게도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답게 어른다운 성숙함으로 예의 바르게 서로의 부모님 안부를 묻고 있을 따름이었다.

안심한 미닉은 캠프장으로 돌아가 모자란 수면을 취하기로 하였다.

 


***

 



비슷한 시각.

저주받은 숲의 서쪽.
 
높은 산에 둘러싸인, 사람이 올 수 없는 험준한 계곡에 고풍스런 양식의 작은 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낡았지만 잘 관리된 장미 정원은 주위 풍경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루시안나 동지.”

“늦었군 기래.”

 


얼마 전 있었던 슬레이어와의 조우 이후 루시안나는 침울해 하였다.

물론 겉으로 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오랫동안 행동을 같이 해 온 루도미르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신감 넘치시던 위대한 수령 동지가 이 성 가장 깊숙한 방에 틀어 박혀서는 며칠씩이나 저 상태라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지만 그의 보고에 흔들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되송합네다. 기 반동분자들은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디 않고 있습네다. ···. 고저..”

“고저..?”

“테오미르 동지가 합류한 거이 같습네다.”

 



루시안나는 다시금 화가 끓어올랐다.

그 놈의 슬레이어만 없었다면 계획을 드러낼 이유도, 반동분자 테오미르와 격돌할 필요도 없었다.

거기에 큰 에비테가 직접 나서게까지 하다니. 

이 계획은 그녀를 따르는 무리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제3자의 개입으로 방해 받고, 결국 큰 에비테의 손에 붙잡혀 온 꼴이 된 루시안나의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닉···.

 


“크크킄...”

 



녀석에겐 자신의 입장을 상기시켜줘야 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먼저 할 일이 있었다.

큰 에비테는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 바로 모습을 감췄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책임이 루시안나에게 넘어 온 상황이었다.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전해 들은 바로는 “녀석들"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루도미르 동지.”

“말씀하시라요, 루시안나 동지.”

“내래 직접 움딕이고 싶디만··· 큰 에비테가 돌아올 때까디는 동지에게 일을 맡겨야갔소. 하디만 넉시 기 슬레이어가 마음에 걸린다우.”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었습네다. 익숙티 않은 기운이었습네다.”

“이름···. 알아봐 줄 수 있갔소?”

 



루도미르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리고 한 가디 더. 기 지역은 오래 전부터 “외곽 지역"으로 남아있는 곳입네다. 슬레이어를 달가워하디 않을 너석들이 많습네다.”

 

 


루시안나의 눈에 잠시 번뜩이는 빛이 지나갔다. 하지만 곧 평상시의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혁명에 연관된 자들을 잘 부탁한다우, 동지. 하디만 다른 귀찮은 것들은 좀 덩리가 되면 좋갔소.”

“걱정하디 마시라요, 동지.”

 



간단히 목례를 하고 사라지는 루도미르를 보며 루시안나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초조하지만 아직은 참을 수 있었다.

때가 되면 어차피 녀석은 내 지시를 따를 것이고, 모든 것은 생각했던 대로 될 것이다.

그는 손가락에 낀 검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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