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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의 방
그들의 이름은 본과 클로드. 테러 아티스트, 즉 테트리스라는 생소한 말로 자신들을 소개한 떠돌이 예술가들이었다. “···그 경계를 넘어서고 무너뜨리는 존재의 절대자라고 할 수 있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거야. 왜냐? 내가 무시할 수 없도록 처음부터 그놈들의 머리통에 팍팍 처넣어 줄 거거든." "팍, 팍, 팍!" 예술 사상이 참으로 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펑, 하고 아름답게 터져 나가." 오므렸던 손을 활짝 펼치며 꿈꾸듯 몽롱해진 눈빛으로 본이 말했다. 얼룩덜룩한 흉터 때문만 아니라면 상당히 곱상한 얼굴에 눈매가 길고 가늘었다. 말하는 내내 셔츠 깃을 건들거나 소매를 접었다 펴는 등 손을 한시도 가만히 두질 못 했다. "파괴는 곧 현실! 그리고 빠밤!" "빠라빠라..
“적어도 하루는 식량 없이 사막을 건너야 할 겁니다. 물은 그전에 떨어질 것이고요.” 랄라와 미닉은 마음을 바꿔 프레야와 테오미르도 대화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몇 번의 위험천만한 실패 끝에 겨우 둘을 진정시키고 착석시킬 수 있었다. 그러고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에휴. 두 꼴통은 조금도 알아들어 먹는 거 같지 않았다. “그거이 왜 걱정이란 말간?” 꼴통 1은 음흉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행의 시선이 테오미르의 고갯짓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오는 조르단을 향했다. "없으멘 만들멘 되디.”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한 테오미르가 저 멀리 있는 조르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지를 척 추켜올렸다. 그러자 뭔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조르단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따..
일행은 제각기 흩어져 한참을 바싹 타버린 집터와 무너진 돌무더기의 밑을 헤집었다.쓸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거기서 찾은 것이라곤 프레야가 발견한,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목조각의 팔 일부였다.네 개의 길고 가는 손가락 끝이 엄지를 향해 모아쥔 형태로 손안에 무언가를 끼워 넣는 것인지 얼마간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손톱은 오색 돌조각으로 장식된 묘한 물건이었다.그것을 꺼림칙한 시선으로 멀리하는 테오미르와는 달리 프레야는 호기심 찬 표정으로 조각의 손가락을 쓰다듬었다. "예쁘다. 그치?" 프레야가 테오미르를 향해 그것을 들어 보이자 테오미르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물건 날한테 갖다대디 말라우. 동무도 돟은 말할 때 버리는 게 좋을 거이아." 테오미르가 경고했다. "왜?" 테오미르는 애매한 표..
프레야 일행이 마을로 이어지는 흙길에 들어선 것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던 초저녁 무렵이었다.사막 허허벌판에서 발길로 다져진 도로의 출현은 지친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곧 음식다운 음식과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침묵 속에서도 활기가 돌았다. 그러다가 변화를 먼저 눈치챈 것은 테오미르였다. 그는 샐쭉하게 눈을 뜨고는 목을 길게 뺐다.별말은 없었으나 서둘러 말을 몰기 시작했다.그와 속도를 맞추는 일행은 테오미르의 태도가 단순히 어린애다운 성급한 성향의 일부라고만 짐작했다. 그러나 마을이 전방에 보이기 시작하자 광경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하나둘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헐..." 하도 황당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미닉. 그곳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니었다.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마을의 초..
잠귀가 밝은 조르단은 두 앞발 사이에 긴 주둥이를 파묻고 자고 있었다. 테오미르의 욕지거리 소리에 설풋 잠에서 깨어나 긴 귀를 쫑긋하고 나른한 졸음의 상태에서 열띤 악담을 듣다가 다시 잠 속으로 빠지려는 찰나였다. 그의 예민한 청각이 낯선 발소리를 알아챘다. 조르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팔처럼 큰 소리로 히이힝하고 울부짖었다. 그에 졸음의 기색이 전혀 없는 목소리로 랄라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외쳤다. "기습이다!" 화들짝 놀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콜콜 잘도 자는 프레야를 둘러업은 조르단이 랄라에게 외쳤다. "전방 200미터 앞에 스물! 4시 방향으로 190미터에는 아홉!" 고향에서 베이스-바리톤을 했다더니 역시나 귀에 촥 감기는 멋들어진 중저음이었다. "오케!" 빠르게 활 통을 둘러멘 랄라가 조..
그날 저녁.하루를 거반 보내고 마침내 서로 합류한 일행은 재정비가 필요하다 결정하고 하루를 더 같은 자리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랄라는 주변을 살폈고, 프레야와 조르단은 식재료를 진득하고 정체 모를 수프로 연성하였다.미닉이 잠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테오미르는 밤새 지필 마른 가지를 모았다.곧 그들 위로 또 다른 밤이 내렸다.그리고 이것은 모두가 잠들고, 불침번을 마친 랄라가 테오미르와 교대한 직후 벌어진 일이었다.테오미르가 먼저 랄라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슬레이어 동무.”"말 걸지 마, 이 악마야. 난 이제 잘 거라구유." 랄라는 걸음도 멈추지 않고 새침하게 대꾸했다.그에 기가 죽을 테오미르가 아니었다. "혹시 페스카즈의 슬레이어라고 아니?” 랄라의 어깨가 움찔했다.발걸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