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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프레야!

9. 첫 기습을 당합니다

습작하면리또마스 2023. 12. 14. 09:09

Photo by Erik Mclean
Photo by Erik Mclean

 

 

잠귀가 밝은 조르단이 그들의 기척을 알아차린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두 앞발 사이에 긴 주둥이를 파묻고 자고 있던 조르단은 테오미르의 욕지거리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긴 귀를 쫑긋하고 나른한 졸음의 상태에서 테오미르의 열띤 악담을 듣다가 다시 잠 속으로 빠지려는 찰나, 그의 예민한 청각이 낯선 발소리를 알아챘다.

조르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팔처럼 큰 소리로 히이힝하고 울부짖었다.

그에 졸음의 기색이 전혀 없는 목소리로 랄라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외쳤다.

 


"기습이다!"

 



화들짝 놀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콜콜 잘도 자는 프레야를 둘러업은 조르단이 랄라에게 외쳤다.

 


"전방 200미터 앞에 스물! 4시 방향으로 190미터에는 아홉!"

 


고향에서 베이스-바리톤을 했다더니 역시나 귀에 촥 감기는 멋들어진 중저음이었다.

 



"오케!"

 



빠르게 활 통을 둘러멘 랄라가 조르단이 지시한 방향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팽 소리를 내며 어두운 허공을 갈라 날아간 화살이 첫 적의 오른쪽 눈알을 꿰뚫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재빨리 다음 화살을 잰 랄라는 연속적으로 활을 쏴댔다.

멀리서 녀석들의 기괴한 비명이 잇따라 메아리쳤다.

 


"기습이라니? 도대체 우릴 누가? 혹시 도적 떼일까요?"

 



긴장한 미닉이 조르단의 앞으로 몇 발자국 옮기며 물었다.

끝이 검게 그은 부지깽이를 두 손안에 꼭 쥐고 있었다.

 


"모르는 소리. 여긴 외곽 지역이라우. 도적 따위가 얼씬거릴 생각도 못 한메.”

 



모닥불을 서둘러 밟아 끈 테오미르는 랄라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갑작스러운 어둠이 들이닥치자 테오미르가 일행의 시야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순간 어둠이 밝아지며 일행은 가까운 주변을 확인하는 게 가능해졌다.

 



“기케도 이건 너무 이름메."

 



미닉이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테오미르를 돌아보았다.

 


"이르다니 무엇이?"

 



테오미르와 조르단은 그저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때마침 마지막 화살까지 다 쏜 랄라가 활을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적어도 다섯 놈은 맞췄길 바라야지."

 



이 난리 와중에도 프레야는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참 잘도 잤다.

덕분에 일행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한 결정은 전적으로 프레야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테오미르와 랄라는 환상에 취한 약쟁이들처럼 한바탕 날뛰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혈기 왕성한 두 사람은 프레야를 어깨에 둘러업고 앞장서서 뛰어가는 조르단의 뒤를 쫓으며 아쉬운 눈길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후 테오미르와 랄라의 설명해 준 바에 따르면 외곽 지역은 변형된 자들의 세계였다. 

과거 슬레이어들의 망령들.

황야에 내몰렸다가 그 자리에서 몰살당한 이들의 기억이었다.

그 피에 물들었던 땅이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밤마다 망령이 되어 되살아나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에게 복수한다.

그런 식으로 둘은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하지만 망령의 존재와 출현엔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 거 같았다.

외곽에 몇만 발자국씩은 떨어진 작은 마을들이 전멸하지 않고 멀쩡히 잘살고 있는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할 것이며, 실체가 없어야 할 기억들이 랄라의 화살에 비명을 지른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더욱이, 왕국이 그것들의 출현을 두고만 보는 것도 이상했다.


그 지방을 여러 차례 지난 적이 있는 미닉에게는 너무도 뜬금없는 이야기였기에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지금껏 서로의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던 테오미르와 랄라가 한뜻이 되어 저렇게 서로 말을 맞추는 모습을 보고 미닉은 그들이 원하는 식대로 일단은 믿기로 하였다.

무엇보다도 미닉이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면 누구든 언질을 주었을 테니까.

하여 미닉은 샘솟는 의문을 가슴 한편에 묻어둔 채 그 이상의 질문은 멈추기로 하였다.
 



“어라? 하지만 이상한데?”

 


하지만 프레야는 의문을 제기했다.

 


“어째서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지?”

 


그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나, 프레야!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얌? 눈앞에 적이 다가와도 모를 거면서. 오호홓"

 



맞는 소리였다.

그러나 프레야는 심술이 나서 괜히 옆에 있던 테오미르의 팔뚝을 매섭게 후려쳤다.

무슨 반론이라도 해보란 뜻이었건만 어찌나 따끔했는지 테오미르는 그저 연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뿐이었다.

 



"이 기집애야, 왜 날 때리네? -진실- 이구만."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프레야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그 옆에서 두통약을 물과 함께 삼킨 미닉은 유심히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베이 수도원은 이제 4일 거리만큼이나 멀어졌다.
 
여기서 안전을 더욱 고려하자면 크게 우회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여행이 일주일은 더 길어질 것이었다.
 
물과 식량에 대한 생각이 미치자 미닉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개밥 사제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사실을 일행들에게 말했다.

 


“기 먼 곳을 또 가다고?"

 



테오미르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뜨겁기는 또 얼마나 뜨거운가.
 
날카로운 사막의 햇볕이 싫은 테오미르는 미닉이 자기더러 같이 가자고 할까 봐 괜히 기가 죽어 어깨를 움츠렸다.
 
몸을 최대한 작게 하면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우회할 거라면 그 마을을 거쳐 누베이 수도원으로 가도 괜찮겠다 생각했습니다. 식량은 물론, 주민들에게 지형에 대한 조언도 들을 수 있고요."

"오호라! 그러니까 이번엔 다 같이 가자는 말이징?"

 



미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날 그런 일도 있고 하여 일행을 두 무리로 나누는 모험은 감수할 수 없습니다.”

"쪼아용! 그럼 난 찬성!"

“오빠 말이라면 나도 무조건 찬성!"

 



테오미르는 그 의견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침묵하며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의 뒤로 조르단이 고개를 들었다.

여태껏 땔감을 모으느라 일행이 모인 사실을 막 알아차린 것이다. 

조르단이 무슨 일인지 물으려고 했다.

 


"그럼 모두 찬성한 것으로 알고 날이 밝은 대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막 앞발을 들어 올린 조르단을 뒤로하고 일행은 각자의 할 일들로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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