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방
11. 미닉은 다만 꺼낸 말이라도 끝맺고 싶습니다 본문
일행은 제각기 흩어져 한참을 바싹 타버린 집터와 무너진 돌무더기의 밑을 헤집었다.
쓸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는데 거기서 찾은 것이라곤 프레야가 발견한,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목조각의 팔 일부였다.
네 개의 길고 가는 손가락 끝이 엄지를 향해 모아쥔 형태로 손안에 무언가를 끼워 넣는 것인지 얼마간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손톱은 오색 돌조각으로 장식된 묘한 물건이었다.
그것을 꺼림칙한 시선으로 멀리하는 테오미르와는 달리 프레야는 호기심 찬 표정으로 조각의 손가락을 쓰다듬었다.
"예쁘다. 그치?"
프레야가 테오미르를 향해 그것을 들어 보이자 테오미르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 물건 날한테 갖다대디 말라우. 동무도 돟은 말할 때 버리는 게 좋을 거이아."
테오미르가 경고했다.
"왜?"
테오미르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꺼렸다.
그럴수록 궁금증이 강해지는 프레야.
말하지 않으려는 테오미르를 답답해하며 프레야는 당장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다그쳤다.
"듣고 후회하디나 말라우."
테오미르가 프레야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꺄아!"
프레야가 곧 비명을 지르며 목조각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그 모습이 뭐가 그리 좋은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던 녀석이 깔깔하고 웃어젖혔다.
프레야는 눈을 흘겼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오니? 이 짐승!"
"처음부터 돟아라 집어 든 거이래 동무디 않니?"
프레야가 매섭게 테오미르의 팔뚝을 내려쳤다.
"때리디 마라! 아프다!"
“너···. 알면서도 내버려 둔 거지?"
“뭐···크.”
참지 못한 테오미르의 눈이 다시 웃음으로 가늘어지자 프레야가 그를 후려치기 위해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얼굴에 웃음기가 쏙 들어간 테오미르.
그는 프레야를 향해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렀다.
"감히! 기래, 한 번 더 그런 식으로 때너 보라우. 내래 맞고도 가만히 있을 거이라 생각하멘 오산이이라우, 동무."
"그럼 네가 뭘 어쩌겠다는 건데, 엉?"
프레야가 팔을 내리지 않고 한 발자국 앞으로 더 다가왔다.
그녀의 손엔 어느샌가 팔뚝만 한 각목이 들려 있었다.
그 태도에서 테오미르는 자신이 얄짤없이 두들겨 맞을 것임을 예감했다.
"쌔 임나 새끼."
테오미르가 잽싸게 도망치자 그 뒤를 맹렬한 살기를 뿜으며 프레야가 쫓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조르단이 그 목각상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
프레야와 테오미르가 마을 터 가장자리에서 죽음의 술래잡기를 벌이는 동안 미닉과 랄라는 교회가 있었던 폐허 부근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은 십자형 건물터를 따라 돌며 건물의 안팎을 뒤적거렸다.
파헤쳐진 땅에 깊숙이 묻힌 거대한 돌덩이나 날카롭게 깨진 유리 조각들, 찢긴 휘장과 융단의 일부, 찌그러진 놋그릇과 나무 조각 따위가 굴러다녔다.
"예상대로군. 이렇다 할 단서가 전혀 없엉! 역시나 여기엔 미스터리의 수상한 스멜이 물씬 풍긴다고오호홓."
여태 탐정 코스프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랄라가 만족스럽게 외쳤다.
그녀는 추론할 실마리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진기한 수수께끼가 도사린다고 믿는 사람 같았다.
지저분해진 손을 탁탁 털은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음. 스멜~"
"랄라 씨 흥미롭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만, 이래서는 누베이 수도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식량이 바닥날 겁니다."
평평하게 쌓인 돌무더기 위에 걸터앉은 미닉이 랄라에게 상황을 상기시켰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미닉의 시선이 어스레한 하늘이 반사되는 착색유리창 조각에 머물렀다.
"적어도 하루는-"
"비켜! 내 앞에서 비키라우!"
별안간 미닉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먹으며 테오미르가 뛰어들었다.
그가 서둘러 미닉의 뒤에 숨자 얼마 지나지 않아 헉헉대는 프레야가 저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부러져 거친 단면을 드러낸 식탁 다리를 쥐고 있었다.
테오미르가 프레야를 향해 날름 혀를 내밀자 분개한 프레야가 나무다리를 무식하게 허공에 휘둘러댔다.
"너 당장 이리로 안 나와?!"
미닉과 랄라는 두 사람이 왜 저러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정상적인 어른들처럼 신경을 끄고 앞서하던 대화를 이어 가려했다.
미닉이 말했다.
“아무리 아껴서 간다고 해도 적어도-”
"나오라고 그랬지?"
"거부한다. 동무가 오디 그러니?"
테오미르의 빈정거림에 참지 못한 프레야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녀가 당장에 랄라와 미닉의 사이에 뛰어들자 테오미르는 미닉을 옆으로 밀치며 측면으로 뛰쳐나갔다.
이제 프레야와 테오미르는 위치가 정반대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서로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욕설을 주거니 받으며 미닉과 랄라를 축으로 빠르게 원을 그렸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미닉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적어도 하루는 식량-"
미닉의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테오미르의 악에 받친 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미친 거이 아니야? 고만 휘두르라!”
상체를 숙인 미닉은 꿋꿋이 말을 이어 나가려 했다.
미닉은 다만 꺼낸 말이라도 끝맺고 싶었다.
“식량이-"
그러나 이번엔 프레야의 목소리가 그의 말을 가로막는다.
“테오미르 정말 죽어 볼래? 당장 이리 와서 무릎 꿇고 안 비니? 어디서 겁대가리 없이 그런 장난을 쳐? 피떡이 되게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엉?”
프레야가 재차 테이블 다리를 휘둘렀고 미닉과 랄라는 더욱 낮게 머리를 숙였다.
“사...”
“미틴 너자래 따로 없다우! 그거이 돔 고만 휘둘라. 휘둘디 말라 내래 말했다우!”
"사ㅁ.."
“테오미르, 거기 서! 당장! 말했어!”
“하아. 정말···.”
미닉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가 고개를 힘없이 좌우로 흔들자 축 늘어진 어깨를 랄라가 말없이 두드렸다.
레트로 갬성 판타지
뇌 빼고 썼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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