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악마는 늘어지게 하품을 합니다
“적어도 하루는 식량 없이 사막을 건너야 할 겁니다. 물은 그전에 떨어질 것이고요.”
랄라와 미닉은 마음을 바꿔 프레야와 테오미르도 대화에 참여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몇 번의 위험천만한 실패 끝에 겨우 둘을 진정시키고 착석시킬 수 있었다.
그러고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에휴.
두 꼴통은 조금도 알아들어 먹는 거 같지 않았다.
“그거이 왜 걱정이란 말간?”
꼴통 1은 음흉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행의 시선이 테오미르의 고갯짓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오는 조르단을 향했다.
"없으멘 만들멘 되디.”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한 테오미르가 저 멀리 있는 조르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지를 척 추켜올렸다.
그러자 뭔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조르단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따봉거렸다.
“봤디? 본인도 찬성한다 하디 않니.”
큭큭 웃는 테오미르.
미닉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제발 닥쳐 이 악마야.'
“얼라라! 조르단이 뭘 발견한 모양인뎅? 주둥이에 뭔가를 물고 있네?”
랄라의 지적에 그제야 조르단이 물고 있던 목각상을 발견한 프레야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헉! 아니, 왜 그런 지저분한 걸 물고 있는 거예요, 조르단 씨?!'
비명이 목구멍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프레야는 필사적으로 테오미르에게 눈짓하였다.
그러나 심드렁한 표정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어쩜, 이 악마!’
그렇다고 어찌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있으랴.
초조해진 프레야가 손톱을 씹으며 조르단이 입에 문 목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던 때,
“어, 그건?”
미닉이 반색했다.
“그걸 어디서?”
"주웠소.”
조르단이 땅에 뱉은 목조각을 집어든 미닉은 부드러운 손길로 조각을 쓰다듬었다.
“전 이걸 종류별로 갖고 있었습니다.”
“꾸에에엑!
프레야가 기이한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미닉을 향해 귀까지 빨개져 울부짖었다.
“아냐! 당장 그 말 취소해! 당장 거짓말이라고 말하란 말이야!”
"뭐? 뭐를 취소하라고?"
“지금 농담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해?!"
그러면서 모두를 둘러보는 프레야.
다들 영문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그것이 프레야를 더욱 미치게 했다.
"모, 모두 미쳤어!"
끓어 넘치는 분노와 당혹감을 억누르지 못한 프레야가 휙 뒤돌아서더니 지평선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일행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점점 더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가운데 악마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
한참을 달리던 프레야.
문뜩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멈췄다.
'뭐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늘은 어둑했다.
뻥 뚫린 사위는 거친 사막으로만 이어질 뿐 마을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프레야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이성을 잃기 전의 일들을 기억해 내려 한참을 애썼다.
그러나 기억은 이상하게도 명확하지 않았다.
테오미르가 알고 싶지 않았던 세상 가장 불결한 진실을 알려줬고, 그 말에 자신이 불같이 화를 냈었는데···.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때.
그 일과 관련 없는, 더 오래된 기억의 한 조각이 그녀의 장식에 가까운 전두엽을 자극했다.
그리고 엄청난 두통.
프레야는 평소 안 쓰던 두뇌를 쓰려니 쥐가 난 머리를 움켜잡았다.
"아앗! 안 돼. 봉인이 풀리려 하고 있어! 멈췃!”
거칠게 심호흡하며 고통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야는 움츠렸던 몸을 똑바로 폈다.
두통과 함께 기억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시 깡통이 된 프레야는 머뭇거리며 제자리에서 돌아섰다.
그러고는 왔던 방향을 거꾸로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미닉 오빠아아!”
걸어가며 프레야는 입가에 두 손을 모아 있는 힘껏 이름을 외쳤다.
“테오미르으윽!”
그 이후에도 삐지는 구성원이 없도록 공평하게 모든 일행의 이름을 하나씩 돌아가며 불렀다.
프레야의 목소리는 광야에 퍼지다가 완전히 묻혀버렸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답도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원**' <알라**타 편>을 읽은 독자라면 필시 한 번쯤 의문을 품었을 자연의 법칙, 즉, 사막에서는 실제 메아리가 잘 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프레야는 코만 훌쩍거렸다.
납작하고, 마르고, 바랜 황야.
무척 외로웠다.
외로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이 모든 고생이 자신의 기구한 팔자 때문이라는 사실에 서글펐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정든 고향과 사람들을 등지고 매일 더 먼 타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이유라도 제대로 알았더라면 괜찮았을까?
누가라도 좋으니 그 이유를 알려줬으면 했다.
누구라도.
'응?'
프레야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귀에 희미한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처음엔 소리가 정말 들린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누군가 노래를 흥얼대며 프레야의 방향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이윽고 가사를 다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두 사람이었다.
남자와 여자였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노래 부르고 있었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내 꿈을 위한 여행~”
“픽가츄!”
"걱정 따윈 없어~"
"없어!"
긴장한 프레야가 숨을 헐떡였다.
"거, 거기 누구세요?"
프레야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 흥겹게 들려오던 노랫소리가 뚝하고 끊겼다.
그러나 마른 흙을 짓이기며 그녀를 향해 쏜살같이 다가오는 거동이 느껴졌다.
그들은 점점 더 프레야와의 거리를 좁혔다.
마치 사냥하는 동물들처럼.
겁을 잔뜩 집어먹은 프레야는 어둑하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사위를 다급하게 둘러보며 더욱 크게 소리쳤다.
"거기 누구 있는 거 다 알아요! 목소리 들었단 말이에요!"
상대방의 침묵은 고집스럽게 이어졌다.
그들의 기척이 위험스럽게 가까워졌을 무렵, 프레야는 자신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두 눈알은 목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으로 부라리고, 어둠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러고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구성지게 노래를 이어받았다.
“내 친구랑 함께니까!!!!!!!!!!!!!!!!”
“핔가핔가!”
레트로 갬성 판타지
뇌 빼고 썼던 소설
(since 2011)